송곡(松谷) 이서우(李瑞雨. 1633-1709)는 자(字)를 윤보(潤甫)라 하며 본관은 우계(羽溪)이다. 현종 때 문과에 급제한 그는 인조반정 뒤에는 대북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청직에 올랐고 숙종 때는 벼슬이 예문관제학에 이르렀다.
문집으로 송파집(松坡集)이 전하는 그는 조선 중기 문인 중에서도 주변 사물을 소재로 읊는 시인 영물시(詠物詩)에 특히 재주를 발휘했다. 그 중 하나가 안경(眼鏡)을 읊은 것이니 다음과 같다.
“둥그렇게 다음은 수정 알 한 쌍 / 눈에 끼면 가는 글씨 파리 대가리만하네 / 우습다. 옥루(玉樓. 코) 끼여 괴로우니 / 향로에서 나는 향기를 맡을 수 없네.”
또, 주둥이가 깨진 술병(缺口甁)을 소재로 삼고는 이렇게 노래했다.
“돼지 같은 배 온전하나 주둥이는 토끼처럼 찢어져 / 담장 밑에 버려진 채 먼지가 쌓였네 / 네 얼굴 방간(方干)과 같아 입술을 땜질할 수 없으니 / 다시 술 한 잔도 따를 도리가 없네.”
방간이란 본래 입술이 찢어진 언청이로 과거에 연이어 응시했다가 외모 때문에 거푸 낙방하자 나중에는 입술을 기워 고쳤으나 이미 늙어버려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는 비운의 주인공.
잘 나가다가 39세에 이인좌(李鱗佐)의 난에 연루되어 죽을 때까지 복직하지 못한 강박(姜樸. 1690-1742)이란 사람은 당시 서울의 세시풍속을 연작시로 읊었다. 그 중 새해 첫날 덕담을 나누는 풍경이다.
“닭 울고 종 울리니 골목 이쪽저쪽 / 사람들 이런 저런 덕담으로 시끌벅적하네 / 축하하듯 아첨하듯 장난말 비슷하니 / 홀연 부자도 되고 아들도 많이 낳았네.”
얼마 전 ’새해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 카피가 유행한 적이 있는데, 18세기 조선사회의 덕담으로 가장 많이 오간 말이 ’아들 낳으세요’와 함께 ’부자 되세요’였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시를 소개하면서 그에 얽힌 일화를 곁들이고 그 시의 품격을 논한 글들을 묶은 저작집을 시화(詩話)라 한다. 그 연원은 매우 오래되어 중국에서는 육조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며, 한반도에서는 고려말 이인로(李仁老)의 파한집(破閒集)을 효시로 삼는다.
앞에 소개한 시 관련 일화들은 한국 한문학사에서는 비교적 무명에 가까운 삼명(三溟) 강준흠(姜浚欽. 1768-1833)이라는 사람의 시화집 삼명시화(三溟詩話)에 수록돼 있다.
시흥 난곡(蘭谷) 태생인 강준흠은 본관이 진주(晉州), 자를 백원(百源)이라 했으며,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으로 인해 그 이름을 역사에 올렸다. 다산은 강진 유배생활 14년째에 유배에서 풀려날 기회가 있었으나, 강준흠이 반대하는 바람에 4년이나 더 귀양살이를 해야 했다고 술회했다.
신라말 최치원(崔致遠)이 해인사 입구 바위에 써서 남겼다는 시를 필두로 강준흠 당대에 이르기까지 역대 시 127편에 얽힌 이야기를 정리한 삼명시화가 최근 민족문학사연구소 한문분과 회원들에 의해 완역됐다.